0_1 Studio의 조재원
SOFA의 다예(DY), 수빈(SB), 승현(SH) - SOFA로 통일


들어가며

SOFA 소장님께 건축가로서의 경험을 여쭤보고자 첫 번째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흔쾌히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JW 반갑습니다. 재밌는 프로젝트 같아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어요. 재밌기만 한 주제는 아니겠지만요. (웃음)

SOFA 무거운 주제이지만 건축을 한다면 한번쯤 모두가 경험하는 일들이니까요. 준공의 전 과정에 걸쳐서 맞닥뜨린 현실적인 벽은 없었는지, 그에 관해 어떤 해결책이 있었는지. 운 좋게 외부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지, 오히려 방해하는 외부 요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협업하는 건축가, 시공자나 건축주 등 여러 액터(Actor)와의 관계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부탁드려요.

JW 프로젝트 중에는 공무원, 그리고 건축주와 오랜기간 법규해석 문제로 지연된 게 있어요. 용산구 서계동의 오래된 필지가 사이트인. 서울역을 바라보고 있는, 되게 복잡한 동네죠. 아직 저개발지역이고, 부분적으로 도시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도 있는. 다만 사이트는 도시재생의 대상 지역에서는 빠져 있었어요.

건축주의 대지는 9~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필지였습니다. 원래 할머니가 사시다가 돌아가신 후 손녀분이 거기에 작은 건물을 하나 지으려고 하셨어요. 그분하고 다른 두 분이 계셨는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신 그 세분들의 취지는 이곳에 조그만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서 작게 운영해 가는 거였습니다. 여성 기술자를 찾아다니며 물어본 끝에 저에게 오시게 되었고, 건축가부터 시공에 관여하는 모든 전문가, 시공자까지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그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때는 복잡하고 너무 작아 할까 말까 했죠 (웃음). 그 작은 사이트에 여러 가지를 하시려고 할 거고 저예산이라. 그런데 막상 그분들을 만나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할 프로젝트보다 안 할 프로젝트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이 프로젝트를 했을 때 다른 분보다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삼아요. 이 프로젝트의 경우 제가 더 좋은 방향을 찾아 줄 수 있겠다, 가고 싶은 방향을 찾아 줄 수 있겠다 싶어 맡게 되었습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해 시공 가능한 분들도 찾고, 목구조를 다루시는 여성 교수님도 찾아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다른 여성 소장님하고도 협업해 기본 계획을 하면서요. 작지만 2층, 3층, 다락방까지 올리면서 알차게 설계해 인허가를 넣었어요.


살기 위한 집이 사람 없는 집을 위해 지켜야 하는 일조권

그런데 공무원이 법규해석에 관해 국토부에 질의를 받겠다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필지 바로 앞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작은 필지와 소위 ‘알박기’라고 하는 혹시나 여기가 개발될 때 개발권을 하나 받기 위해 사람이 거의 살 수 없고 살고 있지도 않은 작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일조권 사선을 받는 여부에 따라 설계 가능한 규모가 축소될 수 있는 거예요.

작은 필지는 법규를 잘 해석해서 불리한 조건들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해요. 원래 일정 규모 이하의 소규모 필지를 끼고 있으면 인접 대지가 아니라 더 멀리 있는 경계선에서 사선을 받게 되어 있어요. 사선을 받으면 그 사선 안에서만 건물을 지을 수 있으니까, 규모랑 밀접한 관계가 있죠. 조금이라도 사선이 뒤로 물러나면 여유가 생기니까요. 그렇게 검토를 했는데 그 앞 필지에 조그만 건물이 있었다는 거죠. 사람이 안 사는 건물이. 건물이 없는 필지에는 그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건물이 있기 때문에 그 법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을 국토부에 질의응답을 받겠다고 한 겁니다.

문제는 국토부에서는 법 적용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살고 있던 살고 있지 않던 어쨌든 ‘건물이 있으면 법 적용 해당이 안 된다’, 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질의응답에 답변을 주신 국토부 관계자에게 전화도 했어요. 단지 개발권을 위해서 억지로 지어진, 명백하게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의 일조권을 위해 사람이 살려고 짓는 집을 못 짓게 막는 법 해석이 맞냐고요. 그분은 자기는 정책적인 취지의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울러 법을 집행하는 지자체에서 그런 현실과 현장을 고려해 조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이셨죠. 애초 개발권을 위해 짓고자한 건물에 허가를 내준 허가청도 문제라고 하면서요.

안타깝게도 용산구의 담당 주무관은 경험이 많은 분이 아니셨어요. 우리도 그렇지만, 건축 담당 공무원 중에서 자기 집을 지어본 사람이 몇 있겠어요? 이 상황을 직접 겪고 비슷한 문제에 마주하지 않는 이상 그 법규의 취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이 법이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까지 생각해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지기 정말 어려워요. 경험이 적으면 적을수록 제시된 문구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다분하고요.

그래서 건축가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법을 공부하고 다시 확인하고 우리의 건축주와 건축물을 위해 설득을 시도해야 해요. 우리가 따르는 법의 취지는 결국은 납세자, 시민으로 하여금 재산권 행사를 하고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서 살도록 하려는 거니까요.


밀도가 높고 건축주가 많은 지역의 정비지구 딜레마

설득을 위해 논문까지 찾아보게 되었어요. 알고보니 해당 건물은 시공 당시에 정비지구로 지정이 되어 있었더라고요. 현행법상으로 어떻게 이렇게 풀어줬을까 싶을 정도로 이 지역에 한해 거의 모든 건축법을 완화 시켜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주거 정비가 잘 되지 않으니까 민간이 자기 돈을 들여서 정비할 수 있게끔 풀어줬던 거죠. 대지 공지 관련 법도 풀어줘 공지를 두지 않아도 되니 건폐율을 늘릴 수 있었고, 일조권 없으니 다닥다닥 붙어서 빽빽하게 올려 지은 겁니다. 그렇게 다세대, 다가구가 빽빽히 들어선 동네 완성.

이렇게 밀도가 높고 건축주가 많은 지역이 되어버린 현재로선 개발이 들어갈 수 없기에 더더욱 고쳐 쓰는 걸 장려해야 해요. 더군다나 할머니가 물려준 작은 땅을 개인이 살려 자기 돈으로 (투기가 아닌)거주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는 행정 입장에서 장려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계속 반대를 하니, 조금 강하게 저희 입장을 주장해야 했습니다.


건축물대장, 실제보다는 기록의 일관성?

또다른 문제가 있었어요. 지금 현재 건물이 서 있는 모양이 기록으로 들어가 있는 건축물 대장상의 도면과 맞지 않았던 거예요. 그리고 공무원에게는 현장이 아닌 서류의 도면이 실체였기에, 서류와 현장의 그것이 다르니 ‘이것은 불법 증축 건물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건축주는 건물을 일제강점기 때 집문서로 사셨어요. 제출한 도면은 여느 설계사무소에서 네모나게 그려 받으신 거죠. 실제 설계는 시공을 하면서 현장에서 변경이 된 거고요. 아마 받은 도면대로 지을 수 없었을 거라고 추정이 되요. 그려준 대로 짓기 어려우니, 허락하는 한 가장자리 경계선에 바짝 붙여 최대한 비슷하게 지은 셈이죠. 현황이 도면과 다르지만 문서를 사셨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합법적으로 지어진 거였습니다. 대충 지어서 약간 삐딱할 뿐이죠.

이후 준공하려 하니 준공도면은 원래 받은 것을 냈을 거고, 대장에 올라갔을 거고. 또 새 건물을 지은 연유를 보니 원래 한옥을 샀었는데 폭풍이 불어 건물앞 벽이 무너졌대요. 재난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재축으로 지은 겁니다. 이런 사연들은 처음 설계할 땐 몰랐던 내용인데… 주무관과 이야기를 하려 하다 보니 다 알아내고 알아봐야만 했어요.

주무관은 계속 ‘이 건물은 불법으로 증축된 상태다,’ ‘이 건물은 불법이다,’ 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냥 새로 벽 세워서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면 좋을 덴데, 이게 또 불가능했습니다. 옆집이 경계를 넘어 들어와 있는 상태인데다 필지가 너무 작아 벽을 새로 세우려면 건축 가능 면적이 더 줄어들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있는 벽을 두고 대수선을 통해 바꿔보려고 했던 거죠. 2층을 약간 증축하는 식으로. 그런데 주무관은 그러면 당신이 불법을 허용하는 게 된다는 거예요. 이 건물은, 자기가 봤을 땐 그냥 불법 증축 건물이라는 거죠.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합법하게 남은 기록의 일관성과 흐름이 필요로 했습니다.

‘건축물대장’은 ‘건축물의 현황을 관리하라고 만든 법’입니다. 건축물 현황이 대장하고 다르면, 그 대장을 고칠 수 있게 열어둔 거죠. 대장이 잘못 그려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어요, 옛 필지 중에는 현재와 완전 다른 것들이 기록상 들어가 있는 게 많습니다. 사실, 공무원으로서는 그걸 어떻게 하기가 애매합니다. 민원인이 불법을 저지르면 적발하고 행정명령하면 되는데 오히려 적법히 하겠다고 하니 본인 책임이 되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는 민원인(건축주)와 이야기 해 현황과 다른 것을 시정하고 가자고 했고요.

그랬더니 ‘짓게 해 주겠다, 다만 도면을 우리가 보관 중인 도면과 엇비슷하게 그려서 내야 한다’고 말을 바꿉니다. (웃음) 뭔지 알겠죠? 기록은 쭉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걸로. 근데 다음번에 건축행위를 할 때 같은 문제를 또 마주치게 되겠죠?


지적도, 우리나라 지적도상의 땅 면적을 다 합하면 실제 면적의 1.5배

또다른 문제는 사실 지적도도 맞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적 현황 측량을 해 보니 알게 됐어요. 문제가 커진 거죠. 이런 비슷한 이유로, 지적을 측량해주는 데에서도 제대로 정확히 그려주지 않습니다. 지적 측량을 했을 때 생각한 오차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이상 그냥 지금 기록대로 내주는 거예요.

우리나라 지적도상의 땅 면적을 다 합하면 실제 면적의 1.5배인가 그렇대요. (웃음) 디지털 지적도가 빨리 안 나오는 이유예요. 복잡한, 이런 관습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죠.

지적 자체가 현황과 다르고, 그 지적도 위에 건물이 잘못 서 있는 겁니다. 땅이 크면 이렇게 예민해지지 않는데 작은 필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정리될 시간이 없었던 곳들은 거의 연쇄 폭탄이에요. 하나가 나서서 바로잡고 가자고 하면 줄줄이 다 바꾸어야 하니까. 작은 건물의 경우, 오차범위가 작아도 크게 영향을 받고요. 그런 행정상의 오류가 결국 건축주로 하여금 정당한 건축행위를 못 하게 하는 건 부당하지 않을까요.


행정과 권익위원회

힘 있는 건축가분들에게 여쭈니 틀린 도면이지만 받아준다는 정도도 공무원 입장에서 많이 배려해준 거라고 하더라고요. 정정하는 건 안 할 거라고 덧붙이면서요. 그럼에도 저와 건축주분은 권익위에 올리고 이후 지적 자체가 틀렸다는 사실까지 합쳐져 변호사 선임을 언급하며 세게 나갔어요. 거기에 대해 주무관은 권익위 등을 취소하지만 않으면 그냥 ‘불법 건축물’이라 일반명령 딱지를 붙이겠다 답합니다.

건축주분이 이제 지쳐하시더라고요. 어쩌다 생긴 목돈이 있어 좋은 취지와 의지 하나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너무 일이 복잡해지니까. 결국 요구대로 얼추 그림을 맞춰 그려내고, 공사는 그 도면과 다른 원도면으로 공사를 하기로 됐습니다. 인허가는 건축주가 다 하는 걸로 했어요. 저는 제 입장에서 인허가용으로 내는 도면을 따로 그려주기 어려웠으니까요. 서로 이해하고 타협을 봐서. 그렇게 인허가가 났어요.

이제 착공해야 하는데 필요한 재료값이 너무 올라 미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12월에 공사를 하는 팀이 시간이 날 때 하자고 미뤄둔 상태. 착공을 할 때 뭐라고 트집 잡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 결국 건축주는 허가 낸 것과 다른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거잖아요.

와 비슷한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남아있는 많은 필지들이 이런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제가 현재 하는 다른 두 프로젝트들도 비슷합니다. 그런 건물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정책적‧도시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거주자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 근데 법이 그런 노력들을 돕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 방식의 해결방식과 접근법이 있지만, 행정상으로 조언을 드리자면 공무원이 해줄 수 있는 것과 해 줄 수 없는 것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좀 무모한 면이 있어요. (웃음) 공무원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만 들고 가야 합니다.

실무에서 관(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설계를 하려고 할 때 문제는 늘 발생해요. 그럴 때 건축주와 어떻게 해결을 봐야 할까요? 건축주가 종종 건축가를 만능해결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불법적인 문제를 편법을 이용해 해결해 주는 게 건축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의 취지나 현실적인 문제를 가능한 고려하고 찾는 일은 할 수 있지만요. 앞서 말씀드린 사례가 할 수 있는 가장 무리수를 둔 거긴 해요. 권익위원회까지 갔으니까요, 그리고 시의원한테도 전화했으니. (웃음) 소용 없었지만.

저는 결국 인허가 난 방식이 몹시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이 (시민에게) 갑질하는 거라고도 생각해요. 허가권을 남용하는 거죠. 건축주가 9평 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싸워야 했는지.


시공 지연

SOFA 혹시 미뤄진 시공도 여성 시공자분이 진행할 예정인가요?

JW 여성 현장소장 분을 섭외했습니다. 근데 인허가가 늦어지면서 공사 일정이 맞지 않게 됐어요. 결국 어떤 설계사무소에 들어가셨죠. 목조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함께하면 좋겠다고 팀을 만들었는데, 지연이 되면서 여려가지가 처음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기에 건물 올리면 페미니스트를 위한 공간을 운영해 보겠다고 했던 건축주 외 두 분도 개인일정으로 빠지고, 저와 함께 기본설계해서 첫 번째 허가를 넣었었던 여성 건축가분도 지연되는 것을 보면서 이탈하셨어요. (웃음) 여성의 협업 구도를 만들고자 했던 초반 계획은 많이 헤어졌죠. 그나마 가구 등은 여성 기술자, 여성 기술인 연합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해 주셨는데, 모르겠어요. 되면 역시 같이 하고 싶죠.

애초 더 잘하는 남성 전문가가 있어도 여성 전문가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좋은 취지였습니다. 혜택, 혹은 차별이라고 하기엔, 이 프로젝트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요. 다만 그런 기회를 얼른 받아낼 여성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요. 프로젝트가 기획대로 되도록 많이 애썼었는데 잘 마무리가 될지 모르겠어요, 아직 열린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SOFA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네요.저희도 여성 시공자 찾기가 너무 어렵더라구요.

JW 네. 그래도 인테리어 방면으로 공사하시는 분들은 계십니다. 설계와 공사도 건물 단위로 했던 분들도 계셔서 문의드렸는데, 출산으로 섭외가 어려웠던 경우도 있어요. 찾다 보면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이런 기회에 찾고 팀을 만들려고 해본 것 같아요. 구조의 경우 좋은 협업 기회가 되었구요.


건축법규 해석 - 법규의 취지에 대한 이해와 고민

SOFA 경력이 쌓이면서 다양한 사례를 접하셨을 텐데, 그 과정에서 변화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일을 처음 경험할 후배 건축가들과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을까 합니다.

JW 관을 상대할 때에는 큰 범주에서 보면 좋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 큰 범주에서 법의 초기 의도 등 가져가야 하는 바를 생각해보길 바라요. 주무관, 담당자가 법을 굉장히 협소하게 해석을 하는 거랑 바를 바 없이, 건축가들도 그러는 경우를 여럿 보게 됩니다. 법의 취지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제약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때문에 취지 등 법은 물론 스스로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의뢰자가 불법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편법을 써서 해결을 요청하는 것도 아닌데, 정당한 건축행위를 행정에서의 해석이 막는 거라면 부당하다고 이야기해볼만 합니다.

해석을 위해 내 집 짓는 것인 양 행정에 설득도 하고 했어요. 어쩌면 건축가가 가는 게 안 좋을 때도 있어요. 건축공무원 입장에서는 건축사사무소가 ‘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건축주에게 알고 있는 바를 토대로 이렇게 이야기해보시라고 말씀드리는 때도 있습니다. 민원을 넣는 등, 건축주가 안되는 부분에 대해 직접 화내는 방법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건축가가 가면 ‘이것도 그려오세요.’, ‘저것도 그려 오세요.’. 희한하죠. 저도 한 명의 시민인데.

건축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구청 민원사이트에 민원을 넣은 적도 있습니다. 무리한 프로세스를 요구하길래 한 명의 시민으로 대응했죠. 시정되더라고요.

역시 가만히 앉아 ‘부당해요.’라고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여러 입장이 있으니까요.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직무나, 책임 권한 등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건축가인 우리들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게 맞겠죠. 이 건물이 잘 지어질 수 있도록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쓰면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초점이 어디 있어야 하는가.’인 것 같습니다.

건축가가 수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계약 내용 내로 행위를 제한하고 그 외의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부차적인 것들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해요.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 아니야?’, ‘어떻게 이 이상 더해?’ 할 수 있는데 건축가의 주초점은 언제나 서비스를 받는 건축주여야 해요.

그리고 설계로 받는 혜택은 한 개인만이 아닙니다. 건축주뿐 아니라 미래의 많은 불특정한 사용자가 받게 되는 부분이 흥미롭죠. 단지 내 클라이언트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건축가는 결국 그 모두를 대변해 행정을 만납니다.

경험이 없을 때에 이렇게 여러가지 고려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아니죠. 이를테면 공무원이 제 의견과 다른 입장에 있는 것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입장은 이해하되 동의 하는건 아니라는. 입장차에 대한 이해가 생긴 거죠. 전략적으로 해야 할 때가 많아요.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잘 보여야 할 때도 있고요. 민관이 협동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 협동할 수 있는 여지는 건축가가 계속 만들어야 해요. 이런 과정에서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상대가 계속 바뀐다는 거죠.


시공자

SOFA 시공자와 있었던 일들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JW 많죠. 도면에 해석의 여지가 많으면 갈등의 소지도 커져요. 도면은 의지를 담고 있으니까요. 현실에 맞게 가기 위해 현장에서는 보고 견적에 맞추어 시공을 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건축주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타협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가령 시공자가 ‘이렇게 하면 하자가 난다.’ 혹은 ‘ A와 B가 똑같다.’와 같은 말을 합니다. 설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공이거나, 제시한 둘이 다른데. 이런 경우가 생겨요.

뜻하지 않게 현장 소장이 바뀌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시공자를 선정할 때 설계자가 무언가를 주장하기는 힘들어요. 어차피 나와 별개의 조직이니까요. 이와 별개로 건축주는 오해를 하기 쉽고요. ‘시공자와 건축가가 한 팀이고 나(건축주)를 놀리는 구나.’하고.

크지 않은 주택 5~60평도 시공비가 1억씩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건 단순히 정밀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시공자의 여러의지가 반영이 된 거예요. 아이러니 하죠, 견적이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 정성적인 거라는 사실이. 설계자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어야해요. 건축주에게 정밀하게 견적서를 낸 시공사라면 추천하거나, 너무 허술히 내오면 위험하다고 조언해야겠죠. 견적서가 꼼꼼하면 비싸게 나와요.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신 예측하지 못한 시공비의 상승은 덜 일어나죠. 하지만 어쨌든 결정은 건축주가 내리니까요.

한번 건축주가 저렴하고 본인의 의견을 잘 따라줄 것 같다고 시공사를 선정했는데 그 시공사가 현장에 진지하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준공이 될 즈음에 공사 현장을 보러 갔는데, 내부마감이 제가 본중… 그런 마감은 본 적이 없었어요. 꽤 고급주택이었는데. 원룸을 표준으로 해도 마감이 이것보다는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표준적인 퀄리티도 안나왔어요. 저는 정말 실망스러웠고요.

직업의식이 있는 시공자라면 디자인 솔루션을 내면 안된다 생각합니다. 경험자의 입장에서 제 디자인에 대해 ‘시공 상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시공 상 하자의 우려가 있다.’, ‘시공의 공정상 이것은 무리다.’, ‘재료 수급이 어렵다.’ 는 전문적인 피드백을 받는건 정말 좋아요, 반대로 디자인 수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전문성이 결여됐다고 봅니다. 설계자가 생각하지 못한 디자인을 시공자가 하는 일은 없죠. 그럴만한 시장이 아니에요.

건축가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충실한 시공자를 추천하고 견적서를 보고 시공자에 대한 신뢰도를 파악하는 선구안을 갖는 겁니다. 시공에 있어 설계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고요.

SOFA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시공사에서 설계자에게 ‘대규모 건물 현장에서도 이렇게는 안한다’는 근거로 시공 요구를 잘라내시는 경우가 있었어요.

JW 시공사에서 그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대규모 현장에서 안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는 거죠? 아, 설계자 측에서 일을 너무 깐깐하게 시킨다는 의미인가요?

SOFA

JW ‘이윤이 많이 나는 현장에서도 이렇게 안하는데, 박한 이윤으로 이렇게까지 하라고 한다’는 거죠? 그럴 수 있죠. 때로는 그 이야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대화해볼 수는 있어요.

건축가가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는 원리가 있을테니 그걸 들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들어보고 타협점을 논의해야죠. 지금 설계사무소의 인력구조나 일하는 방식이 5년 전, 10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 가늠하는 것도 건축가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시공자가 항상 편의만 앞세우지는 않아요. 시공자도 본인만의 규율이 있고, 오히려 어떨 때는 예산에 맞춰 조금 러프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시공자가 ‘그렇게는 못한다’고 하기도 해요. (웃음)


건축 아카이빙 - 건축물과 시대의 반영

JW 한참 전에 건축 프로젝트를 아카이브 할 때 모형이나 남아있는 자료들을 미술관에서 소장용으로 구매했어요.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핏 들었던 소리가, ‘건축에서 무엇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해 ,’모형이나 도면이 실제 지어진 것보다 더 아카이블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게 건축가의 원래 생각이나 의지를 더 담고 있으니까.’ 였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화를 목적으로 하고 만들어진 도면과 모크업(mock-up)이 결국 구현이 안 된 상태에서 ‘실현되지 못한 도면과 모형에 건축가의 생각이나 의지를 더많이 담고 있고 그게 오리지널이다.’라는 생각에 대해, 저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잘 그려진 도면이더라도 오리지널은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건축물이야 말로 그 시대를 반영하는 부분이 있고, 건축가가 무엇을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 등의 관점에서 아카이브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 지점들이 중요해요. 그 건축가가 그냥 타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고요.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졌고, 무엇이 그린 것과 실현 사이 괴리를 만들었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이 사장 흥미로운 지점들이거든요.

‘사회에 건축이 어떻게 담기느냐.’ 건축가의 책상에서 그려진 그림이 바로 현장으로 간다, 그럴리가 없잖아요. 중간에 얼마나 많은 의지과 변경과 사연들이 같이 이걸 만들어요. 이걸 어떻게 건축에 포함을 안할까요. 그렇다면 잃는 게 너무 많죠. 저는 건축가의 작업을 책상에서 나온 도면과 모형으로 국한했을 때 잃는게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건축가가 기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영역이 협소해지도록.

시공 현장의 변수를 모두 파악하고 고려해 완벽한 도면을 그려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가능하거든요. 어떤 경우 ‘도면을 덜 그리는 게 맞아. 그게 건축가로서 선택할 수 있는 스마트한 방식이야. 현장에서 컨트롤해야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건축가마다 당신만의 작전이 있겠죠. 시공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를 테고요.


시공 하역, 역량의 문제?

SOFA 기억하시는 프로젝트 중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던 하역’이 있으신가요?

JW 낮은 시공 퀄리티가 예상되는 작업들이 있어요. 10년 전 쯤 제주도에서 완공한 건물이 있었는데, 로컬 시공자와 함께 일했습니다.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예산이었고, 특히 제주도는 모든 자재를 수입해야하니,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재주도 자재상에서 자재를 구매해 수입을 줄이고, 지역 목수를 섭외해서 진행한 프로젝트.

시공 퀄리티를 감안해 설계한다 해도 도면대로 되지 않은, 애는 썼지만 퀄리티가 원하는 만큼 나오는 않은 지점들이 발생했어요. 현장이 워낙 머니 ‘시공자가 알아서 이정도는 해주겠지’ 하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아쉬웠습니다. ‘알아서’의 해석이 너무 큰 차이를 보이는 시공자일 경우 그 괴리를 짐작하고 때로는 시공자가 할 수 있는 ‘최선’에 맞춰서 설계를 조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가며

SOFA 사실 인터뷰에서 절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게 있어도 부딪혀보고싶은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JW 바뀌지 않는 건 아니에요. 이미 많이 바뀌었어요.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죠. 한국 건축 역사가 70년도 안됐어요.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생애 정도도 안되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가진 역사가 우리가 하고싶은 걸 쉽게 쉽게 도와주는 시스템일리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하나의 사례가 중요하다고 봐요. 정비가 안된 시스템일 수록 괴리가 더 크고 현장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걸 보완해 나가는 것은 결국 각성한 개인들 같습니다.

배구 시스템이 좋아서 김연경 선수가 나왔겠어요? 김연경 선수가 배구 시스템을 만들어가는거에요. 생각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큽니다. 오히려 우리 시스템의 좋은 점이라면 그런 역량을 가진 개인이 나올 기회가 있는 시스템이라는 거겠죠.

그리고 설계사무소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면 ‘이 일을 또 하겠지’ 싶지만 다시는 못해요. 그게 유일한 경험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 경험을 해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진짜 해냈을 때 그 경험치를 충분히 다른 데에 다시 쓸 수 있어요. 무엇이든 진지하게 임하면 큰 역할을 하고 그 프로젝트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협업을 하다보면 경험이 없고 연차가 없다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게 됩니다. 지향점이 가진 에너지가 있으면 경험이 적어도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가 커요.

오히려 전형적으로 경험이 많아서 매너리즘에 빠져서, ‘이건 이래’, ‘원래 이래’, ‘ 안 바뀌어. 애쓰지 마’ 하는 태도가 오히려 안좋은 시스템을 고착화 시키죠. 하지만 시스템은 나름의 속도로 부단히 변해왔고 변해가고 있어요. 그게 나의 입장을 늘 대변해주고 날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하고 머리를 써서 최대치를 만들어내려하는 개인이 있어 결국 시스템도 변화해 나가는 것 같거든요.

제가 막 실무 시작했을 때는 허가서류 사이에 봉투 들어가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그런게 상상이 안되잖아요. 공무원이 아무리 터프해도 지금 봉투를 달라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웃음)

시대가 가진 과제가 있다면 건축도 똑같이 받고 있을 것이고. 각자 위치에서 사회 전체가 나아갈 방향, 지향점을 제시하면서 건축도 시스템이 정비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건축사 시험이 일년에 한 번이네, 두 번이네’ 로 시스템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밥그릇을 지키는데 연연하면 건축계는 정말 AI에 밀릴 거에요.

그래서 SOFA에서 계속 잡지를 출판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계속 목소리를 내고 소통하는 채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매니페스토’가 되면 안되겠지만요. 우리가 가진문제를 사회와 나누기 위해 소통창구로 출판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가진 시스템적 모순이 건축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OFA 저희가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예술계 종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분들 이야기를 듣고 보면 건축계 있는 문제들이 다른 분야에도 있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하게 다뤄지더라구요. 다 같이 바꾸어 나가야 하는게 역시 맞다고 생각해요.

JW 맞아요. 계속 그런 여지를 찾아요. 찾아야 공략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요. 할 수 없는 부분만 들여다 보기보다 할 수 있는 부분을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며 재미를 붙여야 해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내는 게 사회구조상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요. 건축계에도 그런 지점들이 있고, 더 솔직하게 표출되고 나와야 더 건강해질 거에요.